숙의 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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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범씨의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고, 후손이 없으므로 따로 남겨진 기록이 없다. 다만, 철종의 행장(行狀)에 "어린 따님 하나가 있는데 궁인(宮人) 범씨(范氏)가 낳은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1858년(철종 9) 궁인의 신분으로 영혜옹주를 낳았고, 1866년(고종 3) 2월 13일에 정2품 숙의로 책봉된다.
철종에게는 5남 6녀의 많은 자녀가 있었으나 대부분 영유아기에 조졸하였다. 그러므로 무사히 성장한 자녀는 범씨가 낳은 영혜옹주 뿐으로 철종의 왕비인 철인왕후도 옹주를 무척 어여뻐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영혜옹주의 남편이 박영효다. 불행히도 옹주는 혼인 3개월만에 14세의 나이로 요절해서 11년 동안 범씨는 쭉 혼자 살다가 1883년 12월 26일 사망했다.
장례는 1884년 1월 15일 치러졌으며#, 본래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홍제외리(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안장되었으나#,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소재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철종에게는 5남 6녀의 많은 자녀가 있었으나 대부분 영유아기에 조졸하였다. 그러므로 무사히 성장한 자녀는 범씨가 낳은 영혜옹주 뿐으로 철종의 왕비인 철인왕후도 옹주를 무척 어여뻐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영혜옹주의 남편이 박영효다. 불행히도 옹주는 혼인 3개월만에 14세의 나이로 요절해서 11년 동안 범씨는 쭉 혼자 살다가 1883년 12월 26일 사망했다.
장례는 1884년 1월 15일 치러졌으며#, 본래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홍제외리(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안장되었으나#,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소재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3. 매체에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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